목회자 칼럼

선지해장국을 먹어도 되나요

작성자 centralkbc
등록일 09-06-2019 01:00
조회 20회

얼마전에 그리스도인이 선지해장국을 먹어도 되냐고 어떤 분이 물으보신 적이 있습니다. 방금 여호와이레 관련된 글 쓰면서 비슷한 맥락이 있는 것 같아 지금 조금 정리해보겠습니다.

이 문제는 사실 두가지의 문제가 섞여 있는 부분입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인과 '모세의 율법'의 관계의 문제이구요, 둘째는, '피를 먹는 것’은 율법 이전에도 이후에도 금했기 때문에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의 문제입니다. 

첫번째로, 그리스도인은 율법에 얽매이지 않고, 율법아래에 있지 않다…는 것을 잘 아시리라 믿습니다. 신학자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누어집니다. 언약신학자들은 (covenant theologians)과 세대주의 신학자들(dispensationalists) 의 두 부류입니다. 언약신학자들은 구약과 신약의 연결성(continuity)을 강조하고, 세대주의자들은 구약과 신약의 구분(discontinuity)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특히 교회와 이스라엘이 다름을 강조합니다. 두 그룹 다 건전한 신학자들이라고 믿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언약신학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긴 합니다만... 그분들도 구원받으신, 주님 사랑하시고, 건전한 분들입니다. 

언약신학자들은 모세의 율법을 moral law, civil law, ritual law 등의 세가지 정도로 구분합니다. 그리고 civil law 와 ritual law는 폐지되었으나, 여전히 moral law는 남아있다고 가르치지요. 그래서 신약의 그리스도인들도 여전히 살인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모세의 율법가운데 moral law 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반면 세대주의신학자들은 모세의 율법이 서로 너무나 유기적으로 얽혀있어서 위와같이 세가지로 구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함을 말합니다. 신약시대에 예수님이 돌아가심과 함께 구약의 모세의 율법이 완전히 폐지되었음을 믿습니다. 여기까지만 말하면 매우 위험한 생각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안그렇습니다.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그리스도의 법’ (갈라디아서)아래 놓이게 되었고, 성령님이 내주하시게 된 사람들인 바,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따르게 될 때 (롬 8) 구약의 율법보다 더 높은 수준의 삶을 살게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저는 PCC라는 신학교에 다닐 때 수업시간에 껌을 못씹었습니다. 씹으면 PCC 법에 따라 벌점 있으니까요. 도서관에서 신발도 못 벘습니다. 피곤해서 잠도 자면 안됩니다. 잠자고 있으면 sir… 하면서 누가 와서 깨우거든요. 굉장히 창피합니다. 제가 PCC다닐 때는 PCC의 법을 따라야 했습니다. 안따르면 벌점받고, 창피해지고 … 그래서입니다.  그러다 저는 이제 거기를 졸업했습니다. 더 이상 PCC의 법이 제게 효력을 못미치게 되었죠. 이제는 얼마든지 수업시간에 껌을 씹을 수도 있고 … 그렇습니다. 그런데 저는 요즘도 수업시간에 껌을 안 씹습니다. 전에는 벌점 안받으려고, 창피하지 않으려고 안씹었구요, 이제는 그것이 교수님께 실례가 되는 행동인 것 같아서 안씹습니다. 그리고 제가 존경하는 분들에게 잘보이고 싶고, 불쾌하게 만들 수도 있을것 같아 안씹습니다 ^^  하지만 저는 PCC의 법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올바른 행동을 하고자 합니다, 다른 이유에서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인들은 모세의 율법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게 되어 더이상 거기에 구속받지 않은 자유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다른 이유로 더 온전한 행동을 하고싶어서 합니다.. 예컨대, 구약의 안식일은 신약의 주일이 아닙니다. 주일이 안식일이면 주일날 교회빠진 사람들 찾아가서 돌로 쳐야 합니다. 그래서 이제 우리는 안식일이어서 지키는게 아니라, 다른 이유로 주일날 놀러 안가고 교회갑니다. 왜냐면, 나를 구원하신 분을 찬양하고 싶어서입니다, 그것도 교회로 함께 찬양하려고, 함께 지역교회로 모여 말씀을 듣고 교제를 하는 것이 합당하고 그렇게 하고 싶어서입니다. 벌 받을까봐 무서워서 가는게 아니고, 주님이 묶어주신 사랑하는 지체들을 만나고 싶어서 갑니다. 이와 관련된 부분은 여러 글들이 있는데 일단 한 개 글을 링크로 걸어드릴테니 영어로 읽으실 수 있는 분들은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제 두번째로, 피를 먹는 것은 율법 이전 (창세기 9장에서도) 금했고, 사도행전 15장에서도 금한 바 있습니다. 그래서 피를 먹는 문제는 율법과 관련있는 문제가 아니어서 조금 다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 15장에서는 새로운 그리스도인의 율법으로서 피를 안먹는 규정이 제시된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이 가증히 여기는 것들을 피하자는 취지에서 그렇게 금했던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9장을 보면, 그 때부터 사람이 동물을 잡아먹을 수 있는 ‘육식’을 허락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마도 노아의 홍수이전에는 훨씬 더 에덴동산과 유사한 환경이었다가, 홍수 이후 엄청난 지각변동으로 인해 사람에게 육식을 허락하셔야 하는 상황이어서 그랬을 것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그렇게 새로운 경륜의 시작되는 때에 육식을 허락하셨지만, 동물이 살아있는 채로, pulsating blood 를 먹지 말라는 의미로 보는 신학자들이 제가 알기로는 대다수입니다. 럭크만 목사님이라는 분은 수업시간에 그건 피를 drink 하지 말라는 의미라고 말하고 넘어가는 걸 들은 적도 있습니다. 그래서, 피를 먹는 문제는 피를 마시지 말라는 것이고, 동물이 살아있을 때 그 동물에게 달려들어 그 피를 먹는 것을 금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해보입니다. (이와관련 몇 몇 신학자들의 글을 맨 아래에 인용해놓았습니다). 모세의 율법아래 놓여있는 유대인들은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들은 그래서 피를 완전히 빼서 먹기 위해 kosher라는 것을 실행하기도 하죠(인터넷에 쳐보세요). 피를 완전히 빼고 먹고자 하는, 모세의 율법대로 하고자 하는 많은 노력을 기울입니다. 

마지막으로, 문화를 고려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제가 아는 한 세대주의 신학자가 원래 폴란드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나중에 폴란드 선교사로 갔습니다. 미국사람입니다. 거기 가봤더니 폴란드 사람들은 소세지를 만들 때 피를 넣어 만들더라는군요. 자기는 한번도 그렇게 피를 넣어만든 음식을 먹은 적이 없어서, 그 소세지를 먹기가 꺼려졌다고 합니다. 하지만, 피에 관한 규정 자체는 위에서 말한 내용임을 알기 때문에, 폴란드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그렇게 만든 쏘세지는 먹으면 안된다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피를 마시지 말라는 그래서 동물을 먹긴하지만 생명을 존중하라는 의미의 말씀이 원뜻이기 때문에, 그 선교사님은 폴란드인들에게 그 쏘세지 먹는거.. 금하라고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본인은 먹기가 꺼려지긴 했지만 말입니다. 

저는 그래서 선지국도 그런 차원에서 보는 것이 맞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원래 선지국에 피 굳힌거 안 먹어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와서 굳이 그거 먹지 않습니다. 식당가면 해장국에 피 빼달라고 말합니다. 그건 신학적으로나 교리적으로 안되기 때문이 아닙니다. 굳이 먹기가 좀 이상해서일 뿐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에게 선지해장국 먹으면 안된다고 말하거나 가르치지 않습니다. 얼마든지 드시라고 합니다. 삼겹살은 잘 먹습니다. 우리는 모세의 율법아래 있지 않기 때문이구요, 그리고 그건 맛있고 좋아하기 때문이죠 ^^ 

사람의 심리란 참 묘해서 교리나 생각이 사람의 몸의 반응까지도 좌우하는 것을 봅니다. 너무 공부하기 싫으면 배가 아파주기도 하구요, 먹기 싫다고 혹은 먹으면 안된다고 강력히 믿으면 먹다가 토할 수 있게 우리 몸이 도와줍니다. 피넣은 쏘세지 못먹으면 영적이고, 먹으면 육신적인게 아닌거 아시겠죠? 제가 공부해서 확증한 지식하에서, 저는 돼지고기를 먹는데 아무런 문제를 못느낍니다. 선지해장국은 그냥 찝찝해서 안먹습니다. 피를 먹는게 이상하다는 개인적인 ‘느낌’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필요한 경우가 되면 얼마든지 선지해장국 먹을 수 있습니다. 폴란드 가서도 피섞은 쏘세지 안먹고 싶을 것 같지만, 먹어봤는데 너무 맛있으면 먹을겁니다 ^^  그렇지만 성도들에게 먹으면 안된다고 가르치지 않을 것입니다. 

대답이 되었는지 모르겠군요. 이런 부분들은 아까 '이레’를 이름에 쓸 수 있는지와 비슷한 면이 있어보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해당된다는 면입니다. 하지만 어떤 신학자들은 그렇게 'pulsating blood 를 마시지 말라는 뜻이다’ 라는 가르침에 동의하지 않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또다시 결론적으로, 먹지 않아도 주를 위해 먹지 않고, 먹어도 주님의 자유를 감사하면서 먹고… 그래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먹는 사람은 먹지 않는 사람을 우습게 여기지 않고, 먹지 않는 사람들은 먹는 자들을 판단하지 않으면 되는 … 그런 문제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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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point of the prohibition is that people may eat flesh as long as it no longer has life in it—and the blood represented the life. The text is prohibiting not simply the consumption of blood but rather the pulsating lifeblood.
 Allen P. Ross, Creation and Blessing: A Guide to the Study and Exposition of Genesis (Grand Rapids, MI: Baker Books, 1998), 205.

"Restricting the “lifeblood” meant forbidding the eating of an animal while yet alive…”  K. A. Mathews, Genesis 1-11:26, vol. 1A, The New American Commentary (Nashville: Broadman & Holman Publishers, 1996), 402.

"God’s provision of animal life to sustain human life is paradoxical. To preserve man’s respect 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