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9-11장을 읽으면서 큰 문제는 없겠지만 혹시 잘못된 생각이 우리 속에 자리잡게 되는 일이 없게 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느끼고.. 오늘 좀 글을 적습니다. 이 글의 주제는 제목과 같습니다. 택하심은 봉사와 관련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말인지 아래에서 조금 더 설명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한 명 대표를 선택하셔서 그 사람을 통해서 주변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사용하기를 기뻐하시는 걸 성경을 읽으면서 알게 됩니다. 그 택함받은 사람이 제대로 일을 잘 못할지라도. 그래서 그를 통해 축복이 주변으로 잘 흘러가지 못하는 경우도 보시면서도.. 그 원칙을 끝까지 고수하십니다. 왜 그러시는지 이유에 대해서는 또 다른 글에서 다루어야 할 긴 내용이니 다음번으로 미루고, 일단 바울이 이야기하듯이, 우리는 잘은 모르지만 그 방식에 대해 불평할 수는 없습니다. 왜냐면 하나님이 대장이시니까요..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권자시니까요. 내가 세상을 만들지 않고 하나님이 만드셨으니까.. 그렇습니다. 그분은 우주를 운영하시면서 우리의 조언을 필요로 하지 않으시고 순종을 필요로 하시기 때문입니다 (롬 11:34).
그런데, 다른 사람들을 한 사람을 통해 바꾸시고자 하는, 그 한 사람을 선택하시는 기준이 참 우리랑 다릅니다. 우리는 대학교 들어갈 때에도 우수한 학생들은 따로 honor class 로 뽑아서 그들에게 혜택을 줍니다. 그들은 기숙사도 우선 배정해주고 수업도 따로 듣고 교수님들이 따로 관리도 해주는 혜택/축복을 받습니다. 다시 말해서 누가 뭘 잘했으니까 그를 선택하고, 누구는 잘 못해서 그를 선택 안하고… 그것이 너무 자연스럽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걸 제대로 하지 않을 경우 온갖 비난을 다 받게 됩니다. ‘공평’해야 한다는 겁니다. 특혜는 불공평한 거니까요. 그런데, 하나님은 선택기준이 우리와 다르십니다. 하나님이 새로 창조하신 지구를 아담에게 맡기시고 아담을 선택하여 통치하게 하셨을 때 (election for service) 그가 잘 할 것 같아서 선택하지 않으셨고, 잘 했기 때문에 선택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냥 선택하셨습니다. 그걸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선택하셨다고 부릅니다 (sovereign elect for service). 아브라함도 아내를 팔 파렴치한인지 몰라서 그를 선택하지 않으셨고, 그냥 하나님이 많은 민족들 가운데에서 한 사람 아브라함을 주권적으로 선택하셨습니다. 그와 그의 후손을 선택하신 겁니다. 그를 통해 얻을 이스라엘 민족이 뭔가 잘 할 것 같아서, 뭔가 마음에 썩 드는 민족이어서, 뭘 잘했기 때문에 선택하신게 아니고 하나님의 주권으로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그냥’) 선택하셨다는 것을 로마서에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롬 9:15 “...내가 긍휼을 베풀 자에게 긍휼을 베풀고 내가 불쌍히 여길 자를 불쌍히 여기리라.” 롬 9:16 “..그것은 원하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고 달리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며 오직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 롬 9:20 “...오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하나님]께 대꾸하느냐? 지어진 것이 자기를 지은 이에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이렇게 만들었소, 하겠느냐?”
긴 이야기를 짧게 하자면, 성경의 기록 목적은 사람이 어떻게 구원받느냐 (구원) 아니고 왕국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여 다가올 왕국에서 공동상속자의 위치에 서게 되느냐)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이걸 신학자들은 다르게 표현해서 성경의 주제는 구원이 아니라 '영광' (glory of God)이다 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Charles Ryrie, Dispensationalism,48 ). 다시 말해서, 비록 ‘구원’(지옥에서 받는)이 나의 초미의 관심사이기도 하고 그것에 대한 감사가 나를 지금껏 하나님을 섬기는 길을 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 사실이며, 구원이 한 사람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기에 충분한 놀라운 주제인 것은 사실이긴 하지만 (사실 우리는 더 온전히 구원에 대한 감사로 인생이 변화되길 원합니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을 읽을 때마다 모두 지금 이 구절이 나의 구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읽게 되면 이상한 교리, 하나님의 성품과 반대되는 교리..에 나 자신이 빠져들게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성경의 단어들을 우리가 알고 있는 사전에 대입하여 이해해도 안되고, 성경 자체에서 뭐라고 정의하는지를 살펴보는 것 또한 아주 중요한 성경해석의 원칙입니다 (홈페이지의 성경공부 방에 올려놓은 '성경의 해석과 적용'을 참조하세요). 예컨대 사랑과 미움이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네 부모를 공경하라… 고 말씀하신 걸 볼 때 우리가 부모님을 사랑하기를 원하시는 걸 알 수 있습니다. 또 네 아내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걸 보면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건 너무 당연합니다. 그런데, 이런 성경구절이 있는 걸 보고 저는 당황한 적이 있습니다.
(마 10:34) 내가 땅에 화평을 보내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나는 화평이 아니라 검을 보내러 왔노라. (마 10:35) 사람이 자기 아버지를 딸이 자기 어머니를 며느리가 자기 시어머니를 대적하여 불화하게 하려고 내가 왔나니 (마 10:36) 사람의 원수들이 그의 집안에 속한 자들이리라. (마 10: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이 부분을 누가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눅 14:26) 어떤 사람이 내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나 어머니나 아내나 자녀나 형제나 자매나 참으로 자기 생명도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
이게 왜 충격이냐면 성경안에서 ‘사랑’과 ‘미움’은 상대적인 개념인 걸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사랑은 많은 경우 decision to bestow blessing이라고 Lopez는 설명합니다 (링크나 첨부파일을 참조하세요). 예컨대 아내가 남편을 사랑해야 하는건 맞지만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선 안되고 하나님을 가장 사랑해야 하는 것은 크리스챤들이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성경적으로 표현을 하자면 ‘남편은 아내를 미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덜 사랑해야 한다'는 걸 '미워해야 한다'고 성경에선 표현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다음 구절을 조금 더 이해할 수가 있습니다. (롬 9:13) "이것은 기록된바, 야곱은 내가 사랑하되 에서는 미워하였느니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두가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첫번째는 하나님이 제사장왕국을 야곱을 통해 얻고 에서를 통해 얻지 않기로 정하셨다는, 야곱 개인은 선택하고 사랑해서 구원했고, 에서 개인은 미워해서 안선택하고 지옥갈 자로 만들었다 는 뜻이 아니란 겁니다. 두번째는, 이 구절은 야곱 개인과 에서 개인을 말하는게 아니고, 야곱의 민족인 이스라엘과 에서의 민족인 에돔민족을 말한다는 겁니다. 즉, 하나님이 온 세상을 축복하기 위해 한 민족을 선택하시기로 정하셨는데(구원아닌 봉사로) 에돔민족이 아닌 이스라엘 민족을 선택하셔서 그 일을 이루시길 작정하셨다는 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에서는 미워했고 에돔은 미워했어서 그들은 다 선택받은 자들이 아니어서 지옥갔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이렇게 시내산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출 19:6) "또 너희는 내게 제사장 왕국이 되며 거룩한 민족이 되리라”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은 제사장왕국이 되도록 택하셨다는 뜻입니다. 천국가도록 택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성경을 읽을 때 전부 구원으로 해석하시면 극단적 칼빈주의자가 저절로 됩니다.
서두에 언급한 것처럼 하나님은 온 민족을 그냥 축복하시면 될텐데 그 방법을 싫어하셨던 걸로 보입니다. 더 쉬운 방법 말고 더 어려운 방법을 택하시는 하나님을 봅니다. 실패할 가능성이 너무나 농후한데도 굳이 누군가를 선택해서 그를 통해 축복이 주변으로 흘러가게 하는 방법을 원하시고, 그 일이 그를 통해 이뤄질때 하나님이 그를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온 민족, 온 세상을 축복하시기 위한 도구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셨다는 겁니다. 그들은 보기좋게 실패했지만 말입니다. BC600년경 보기좋게 실패하여 바빌론에게 멸망했고, AD30년 또 보기좋게 실패하여 자기 메시아를 죽였고, AD70년 또 다시 주신 기회를 발로 걷어차고 사도들을 다 죽이고 로마제국에 멸망당했고… 2020년 현재까지도 그들은 제사장왕국으로서 그들을 통해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도록 그 제사장왕국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선택받은 민족이라고 뽐내면서, 자신들끼리만 어울리고, 다른 이들을 업신여기는 것이 느껴지게 함으로써, 대부분의 이방인들이 아주 싫어하는 사람들로서 살고 있습니다. 택하신 목적에 턱없이 못미치며 살고 있습니다. 참 더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그들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시고 (택함이 행함이 아니라 오직 믿음에 의한 것이 되게하시려고), 대환란 끝무렵 하나님의 영을 민족적으로 부어주셔서 그들을 민족적으로 회개케 하시고, 그들이 거부한 메시아는 재림하셔서 천년왕국에서 그들을 제사장민족으로 선택하셨던 그 원래 목적을 결국 달성하실 것임이 요한계시록에 나타나 있다는 것입니다.
선택은 구원이 아니라 봉사다..라는 신학자들의 표현은 그래서 나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택했다는 말은 이스라엘을 제사장왕국으로 택했다는 말입니다. 즉, 다른 민족들을 축복할 통로로서, 다른 민족들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만들 도구로서 그들을 선택했다는 말이지 모든 이스라엘 민족을 천국갈 자들로 택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즉, 이스라엘 민족은 구원하기로 선택했고 다른 민족들을 지옥보내기로 선택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선택, 택함, chosen, elect 란 단어가 나올 때마다 구원과 상관없는 다른 aspect (봉사의 특권)를 손가락으로 가리키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시면, 로마서를 읽으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authorial intent 를 조금은 더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야 성경을 조금 더 올바로 나누어 볼 수가 있습니다 (딤후 2:15).
택함의 예를 좀 더 들어보겠습니다. 하나님은 아론을 택하셨습니다 (민 17:5). 아론은 구원받게 하셨단 말이 아니고 대제사장으로 봉사하도록 택하셨다는 말입니다. 택하심은 봉사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택하셨습니다. 구원했다는게 아니고 그를 이스라엘을 이끌고 나올 리더로 택하셨다는 말입니다. 택하심은 봉사입니다. 하나님은 레위지파를 택하셨을 때 구원받게 하신게 아니고 제사장으로 택하신 겁니다 (삼상 2:28). 하나님은 사울을 택하셨는데, 구원으로 택하신게 아니고, 이스라엘 다스릴 왕으로 (봉사) 택하셨습니다 (삼하 2:16). 심지어는 하나님은 예수님도 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약과 함께 보시면 이 구절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elect입니다. 택함받은 자. 내가 선택한 자.
(사 42:1) 내가 떠받쳐 주는 나의 종, 내 혼이 기뻐하는 자 곧 나의 선택한 자(mine elect)를 보라. 내가 내 영을 그 위에 두었은즉 그가 이방인들에게 판단의 공의를 베풀리라. (사 42:2) 그는 외치지 아니하고 자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것을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예수님을 elect 하셨다는 말은 지옥갈 예수님을 지옥에서 구원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왜냐면 택함은 구원이 아니고 봉사(특권)을 가리키니까요.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베풀 자격있는 하나님의 도구로 선택하셨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을 부르셨습니다 (구원) 그리고 택하셨습니다 (봉사로 특권으로). 개별적으로 제사장 역할을 하면서 이방인들을 구원하도록 택하셨습니다. 전도로 택하신 셈입니다. 택함은 구원이 아니라 service 요 특권를 가리키는 표현임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 중에서 한 사람을 선택했다는건 그 한 사람만 구원하고 나머지는 다 지옥가게 정했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 한 사람을 통해서 다른 이들을 축복하려고 선택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을 선택할 때 하나님 마음이란 겁니다. 그리고 우리랑 다르게 뭘 잘해야 선택받는게 아니란 말씀을 하는 겁니다. 이런 사실을 새삼 로마서에다 기록하면서 바울은 지금 자신이… 자신같은 자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했고 하나님 사랑하는 자들을 죽였던 자신을 .. 그들을 향한 복음의 도구로 선택하신 걸 지금 감격하고 있는 것이며, 이스라엘같이 목이곧고 고집센 백성을 택하셔서 이방인들을 축복하시려고 작정하셨던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고 있는 것입니다.
제 글의 결론은 로마서 9-11장을 읽으실때 일단 해석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나 개인에게 주시는 말씀으로 직접적으로 바로바로 적용하기 전에 해석먼저..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9-11장은 특히 그러합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하나님, 다른 민족을 택하지 않으신 하나님 그 관점에서 보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만 파라오의 마음을 굳혀서 그를 징계하심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낸 것은 그가 이미 선을 넘어서 징계해야하는 때가 된 상태에 있는 이를 어떤 방식으로 징계하실지 또한 하나님의 마음인지라, 마땅히 징계할 그를 징계하시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능력을 드러내고, 그를 통해 이스라엘을 가르치셨다는 것을 말하고 있지, 파라오는 지옥가기로 정해진 자여서 마음을 굳히셨고 그는 믿고싶어도 믿을 수 없었다..고 믿는 것은 .. 그렇게 믿는 분들도 계시긴 하지만 (그리고 훌륭한 많은 분들이 그렇게 믿으시기도 하지만), 성경을 올바로 나누어 볼 때 합당치 않은 해석이다.. 라고 저는 믿는다.. 는 말씀을 드리고자 했습니다. 이렇게 해석을 하고 나서 그 전체 그림 가운데에서 개별적인 구절들을 자신에게 적용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올바른 해석 아래에서 올바른 적용을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심정을 더 온전히 느끼고 깨닫고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켜주실 줄 믿습니다. 주님이 우리 모두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어주시길 기도합니다.